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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좌초로 선체가 반파될 수 있을까?천안함 ‘좌초’에 대하여

사탕98 2018. 10. 28. 10:27


좌초로 선체가 반파될 수 있을까?천안함 ‘좌초’에 대하여 ①


출 처: http://www.minplus.or.kr/news/articleView.html?idxno=6178


  •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 승인 2018.10.19 12:50

지난달 13일 평택2함대에서 열렸던 천안함 선체 및 어뢰에 대한 검증절차를 기점으로 천안함 사건 관련 항소심 재판이 후반부로 진입했다. 하여 지난 8년간 분석하고 재판을 통해 확인되었거나 문제가 제기된 내용들을 총정리하여 주제별로 연재한다.[필자주]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려합니다. “천안함은 최초 좌초되었다”는 저의 주장을 공격하며 지난 8년 간 국방부 관계자들과 보수논객들이 가장 많이 주장했던 논리는 “좌초로는 선체가 반파되지 않는다”였습니다. 

좌초로 선체가 반파될 수 있을까?

오늘 말씀드릴 주제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인터넷 검색창에 ‘좌초’를 입력하고 이미지 검색만 해도 무수히 많은 결과물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구글에서 ‘좌초’로 검색한 ‘좌초후 반파 사례’

좌초만으로 선체가 반파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선박이 ‘철’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매우 강한 구조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구조역학적으로 볼 때 선박은 그렇게 강한 구조물이 아닙니다. 선박의 설계기준은 ‘물에 떠있을 수 있고 목적(운항. 운송. 전투 등)을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에 맞추어 설계되어 있습니다. 

철판을 더 많이 더 두껍게 쓰면 더 튼튼하고 강한 구조물이 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물에 떠있기 어렵거나 경제적 효용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구조물이 유체 위에 떠서 운항을 하면서 때로는 태풍과 폭풍을 만나고 때로는 좌초, 충돌, 폭발 등의 사고를 당하기도 하며 반파되는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좌초로 얼마든지 반파 가능하다’는 사실은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 알 수 있음에도 국방부가 “좌초로 선체가 반파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그것이 일반 대중들을 호도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마치 제가 “좌초로 천안함이 반파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천안함은 좌초로 반파되었는가?

선박은 좌초로 얼마든지 반파되는 것이 가능하지만, 천안함은 좌초로 반파되지 않았습니다. 정작 천안함을 반파시킨 것은 ‘충돌’입니다. 

천안함이 2010년 3월26일 밤 9시15분경 백령도 서쪽 저수심 지대에서 최초 좌초를 당했을 때 선저하부가 찢어지고 가스터빈실 외판 부위에 파공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좌초 상태에서 무리하게 배를 빼는 바람에 프로펠러가 휘어지고 심각한 침수가 발생하여 기동력에 문제가 생깁니다. 

잠시 표류하던 천안함이 수심 47m 지점에 이르렀을 천안함 좌현 중앙부가 ‘굉음’과 함께 뚫리고 잠시 후 선체가 반파됩니다. 결국 천안함 그리고 충돌한 수중함선 모두 백령도 해역에 침몰합니다. ‘좌초’ 그리고 연이어 발생한 ‘충돌’ 그것이 천안함이 겪은 사고의 전말입니다.

저는 천안함 사건 초기부터 ‘좌초 후 충돌’을 주장했으며 그것은 온전하고 면밀하게 분석한 저의 결론이며 단 한 번도 흔들리거나 번복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국방부를 비롯하여 악의적인 언론이나 보수논객들은 저의 주장을 ‘좌초설’ 속에 꽁공 가둬두려 애를 썼습니다.

제가 천안함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접근한 순서와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천안함에 ‘폭발’이 존재하는가? - ‘폭발’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

둘째, 천안함에 ‘좌초’가 존재하는가? - ‘좌초’가 존재했다는 결론 

셋째, 천안함이 ‘좌초’로 반파되었는가? - ‘좌초’로 반파되지 않았다 결론 

넷째, 그렇다면 천안함을 반파시킨 외력은 무엇인가? - ‘충돌’이라는 결론 

다섯째, 천안함 사고원인의 최종결론은? - ‘좌초 후 충돌’이라는 결론 

선체를 반파시킬 정도의 거대한 충격을 유발하는 사고로 손꼽을만한 3대 요인 - ‘폭발, 좌초, 충돌’ 중에서 ‘폭발’을 제일 먼저 배제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폭발’의 존재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입니다. 

‘좌초’와 ‘충돌’은 선체 손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봐야 확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폭발’은 나타난 정황과 현상만으로도 충분히 판단 가능하며 무엇보다 ‘좌초’와 ‘충돌’은 ‘물리적 변화’만 일으키지만 ‘폭발’은 ‘물리‧화학적 변화’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그러한 ‘화학적 변화’가 존재하는지 여부만 판단하면 되는 것입니다.

천안함에 ‘폭발’이 존재했는가?

천안함에 ‘폭발’의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폭발’은 ‘연소 및 산화’의 과정이고 그 현상은 반드시 결과물로 남아야합니다. 그러나 천안함에는 ‘물리적 변화’만 존재할 뿐 ‘화학적 변화’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국방부는 천안함에 나타난 현상만으로는 ‘폭발’을 입증할 수 없게 되자 이른바 ‘1번 어뢰’를 등장시켜 존재하지 않는 ‘화학적 변화’의 맹점을 ‘어뢰=폭발’이라는 등식으로 메꾸었을 뿐입니다. 

그러면 선박에 ‘폭발’이 존재했다면 어떠한 현상들이 나타났어야 하는지 간략하게 10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화약냄새

천안함 생존대원 거의 대부분이 “기름냄새는 맡았지만 화약냄새는 맡지 못했다”고 진술합니다. 폭죽 하나만 쏘아도, 성냥 하나만 그어도 화약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360kgTNT 화약이 터져 배를 반토막냈는데 화약냄새가 없었다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는 얘깁니다. 1865년 미국 ‘해군병기의 아버지’라 불리운 달그린 제독은 어뢰피격 경험을 회고하며 “화약냄새가 진동했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2) 인체손상 - 이비인후과적 손상이 없다

승조원 어느 누구도 장파열, 코피, 고막 손상 등 폭발로 인한 신체손상이 없었습니다. 희생자의 사인 또한 ‘전원 익사’였습니다. 선체는 거대한 깡통과 같아 충격파로 인한 신체손상이 더 큽니다. 천안함에는 ‘폭발의 3대 효과’인 열, 파편, 폭풍 그 어느 것도 없었고, 폭발에 가장 취약한 ‘생명체’가 ‘폭발에 의한 손상’이 없었다면 그것은 폭발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물고기 폐사 - 백령도 까나리

백령도 3∼4월은 까나리 풍어철입니다. 어민들에겐 1년 수확과 생계를 보장하는 수단입니다. 그 시기 인근 해역엔 까나리가 우글거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360kgTNT 폭발에 폐사한 까나리는 단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폭발이 있었다면 인근 해역엔 폐사한 까나리군락이 포구마다 해변마다 발견되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백령도 까나리들이 북한 어뢰공격 예측하고 모두 외해로 도망갔다는 우스개 소리가 회자되곤 했습니다. 

(4) 물기둥

천안함에서 ‘물기둥’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고순간 함교밖 좌우엔 견시병이 있었고 그들 중 누구도 물기둥을 본 사실이 없음을 법정 증언하였습니다. 수중폭발이 있었다면 2∼20만 기압의 압력이 사방팔방 확산되다가 탁 트인 수면 위로 솟구쳐 100m 이상의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로 솟구친 물기둥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5∼8초이며 폭발소리에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간 견시병이 그것을 보지 못할 수 없는 것입니다. 

▲ 호주 토렌스함 어뢰폭발 실험 [사진 : 천안함 추모관 동영상 갈무리]

국방부는 폭발로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져 견시병이 뒤를 보지 못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어뢰 폭발실험 어떤 동영상을 보아도 폭발과 동시에 즉시 선체가 기울어지는 사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체가 반파되고 난 후 무게중심의 이동에 의해 선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폭발에 의한 선체 움직임의 특성입니다. 

(5) 고열(高熱)의 존재여부

천안함에 ‘화학적 변화’ 존재를 입증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열(高熱)의 존재여부’입니다. 폭발은 반드시 고열(高熱)을 동반합니다. 국방부는 천안함 절단면 하부에서 무려 섭씨 3000도의 고열이 발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위의 호주 구축함 토렌스호 어뢰실험처럼 선체 내부가 완전히 녹아내려 떡이 되었어야 하는데 천안함 절단부에는 케이블과 구리선 사이의 투명한 비닐조차 녹은 흔적 없이 나풀거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6) 화염(火焰)과 그을음

폭발시 고열(高熱)과 함께 화염(火焰)이 발생하며 화염은 반드시 ‘그을음’을 남깁니다. 우리가 흔히 뉴스로 보는 ‘가정집 프로판가스 폭발사고’ 현장 사진만 보아도 내부가 그을음으로 시커멓게 되어 있는 장면을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하곤 합니다. 그것이 ‘폭발의 결과물’입니다. 앞의 ‘호주 토렌스함 어뢰폭발 실험’ 영상에서도 내부가 시커멓게 변한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7) 형광등

천안함 ‘희대의 미스테리’로 회자되며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사례입니다. 형광등 바로 밑 9m 하부에서 몇 겹의 철판을 작살내며 치고 올라오는 2∼20만 기압의 충격파와 섭씨 3000도의 고열에도 어떠한 손상을 입지 않은 형광등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천 두라3호 유증기 폭발시 30m 떨어진 선교의 손가락 두께 유리창들이 모두 깨졌다는 사실과 너무나 대조됩니다. 국방부는 ‘방폭·내진 형광등’이라고 변명했지만 그런 형광등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8) 충격파(衝擊波) 

선체는 거대한 ‘북’과 같습니다. 선체 외부에서 폭발해도 내부로 전달되는 충격파로 인해 사람의 신체에 손상이 발생합니다. 2차 대전 진주만 공습 후 외판손상이 없음에도 내부에 목이 달아난 시신들이 발견되어 연구되었는데 선체 진동에 따른 충격파가 호흡기로 흡입되어 장내 손상 후 빠져나갈 때 기도가 닫혀버려 절단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인천 두라3호 폭발사고 시에도 상당수 시신이 신체의 일부가 절단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9) 커다란 굉음(轟音)

폭발은 ‘굉음(轟音)’ 즉 큰 소리를 동반합니다. 사고 당시 큰 소리(폭발음‧충격음)를 들었다고 대원들은 증언하지만, 정작 사고지점에서 가까운 연화리 주민 가운데 360kgTNT 어뢰폭발 소리를 듣고 집밖으로 뛰쳐나온 주민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멀리 두무진에서 속초함이 새떼 보고 포를 쏠 때 주민들이 뛰어 나옵니다. 어뢰의 화약은 함포 화약에 비해 수십 배나 되는데 어뢰폭발 소리를 들은 주민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즉 큰 소리는 났으되, 어뢰폭발 소리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 적외선카메라(TOD) - 폭발이 없었음을 과학적(실험적)으로 입증

천안함 반파 직후의 TOD에 과학적 진실이 있습니다. 천안함 하부에 어떠한 온도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고 과학적으로 입증해주는 것이 바로 TOD영상입니다. 

위 좌측 사진은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가 불에 달군 쇠막대(수백도 수준)를 물에 담구었을 때 TOD(적외선카메라)에 나타나는 온도의 변화를 촬영한 모습입니다. 만약 3000도 폭발이 존재했다면 따뜻해진 주변 해수는 이와같이 차가운 선체 외판보다 더 짙은 색으로 나타났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천안함 반파직후 모습을 보여주는 우측사진에서는 3000도 폭발이 존재했다고 하면서도 적외선카메라에 색상의 변화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시 천안함 하부에 어떠한 온도변화도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과학적 증거인 것입니다. 

이렇듯 ‘폭발’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자 국방부는 이른바 ‘1번 어뢰’를 등장시켜 그것이 ‘천안함을 반토막낸 폭발의 증거’라며 국민을 호도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폭발’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은 추후 ‘1번 어뢰’에 대하여 논할 때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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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 좌초했다” 브리핑한 사람들천안함 ‘좌초’에 대하여②


출처: http://www.minplus.or.kr/news/articleView.html?idxno=6180

  •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 승인 2018.10.20 10:13
지난달 13일 평택2함대에서 열렸던 천안함 선체 및 어뢰에 대한 검증절차를 기점으로 천안함 사건 관련 항소심 재판이 후반부로 진입했다. 하여 지난 8년간 분석하고 재판을 통해 확인되었거나 문제가 제기된 내용들을 총정리하여 주제별로 연재한다.[필자주]

1. 천안함 항해당직사관 ‘좌초’ 보고 및 브리핑하다

(1) 김광보 포술장

천안함이 좌초했다는 보고를 최초로 한 사람은 천안함 김광보 포술장입니다. 그는 천안함 반파 직후 21시28분경 2함대 사령부에 자신의 핸드폰으로 보고를 하고 구조요청을 합니다.

국방부조사보고서 127쪽

(2) 천안함 전투정보관

김광보 포술장이 2함대에 보고한 2분 후인 21시30분경 천안함 전투정보관 역시 자신의 핸드폰으로 ‘좌초’보고를 하고 구조를 요청합니다. 

사고 순간 상황보고 및 전파 / 국방부조사보고서 36쪽

(3) 2함대 22전대장 이원보 대령

사고 다음날인 3월27일 2함대 이원보 대령은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브리핑을 합니다. “천안함이 ‘최초 좌초’했었다”며 작전상황도를 펼쳐놓고 설명합니다. 

이원보 전대장 “천안함이 좌초돼있다” 브리핑 / 미디어오늘 기사 캡쳐

(4) 작전관 박연수 대위

작전관 박연수 대위는 당일 항해당직사관입니다. 사고 당시 자신이 항해를 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안함 사고 순간을 겪은 당사자이며 천안함을 저수심지대로 몰고 들어간 항해장교입니다. 

박연수 대위는 그의 3월31일 작성한 진술서를 통해 “3월27일 오후2시 평택항에 이송된 뒤 실종자 가족들에게 상황 설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는 “입항 직후 지통실(지휘통제실)로 이동 후 주의사항을 듣고, 함대 작전참모, 감찰실장 등 4∼5명으로부터 보고 듣고 느낀 것만 사실적으로 실종자 가족들에게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한편 박연수 대위는 그가 작성한 3월28일 진술서에서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과 생존자들의 진술이 매우 상이하여 실종자 가족들은 저의 상황 설명을 듣기 거부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박연수 대위는 천안함이 소속되어 있는 22전대의 전대장인 이원보 대령에게 그가 겪었던 사실대로 최초 사고인 ‘좌초’에 대한 보고를 하였던 것이고, 그 보고를 받은 이원보 대령은 자신이 보고받은 대로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천안함이 좌초했다”고 브리핑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박연수 대위 스스로 ‘천안함이 최초 좌초한 지점’을 희생자 유가족인 이용기씨(해군 부사관 출신)에게 정확하게 찍어주었으며 이용기씨는 박연수 대위가 찍어주는 위치에 별표와 함께 ‘최초 좌초’라고 마킹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아시아경제’ 윤동주 기자의 포토기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윤동주 기자 기사 캡쳐

윤 기자는 그의 <사고지역은 초계함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라는 타이틀 기사에서 “27일 평택 해군 2함대에서 해군관계자와 생존 선원들에게 브리핑 받고 나온 실종 선원 가족들이 해군이 설명한 당시 상황들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당시 작전상황도를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최초 2함대 사령부와 이원보 22전대장, 천안함 항해당직사관 박연수 대위는 그들이 보고 듣고 겪은 사실 그대로 실종자 가족들에게 브리핑하였으나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지역은 초계함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며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해군의 브리핑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이 진술서, 증언 그리고 보도기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지요. 

2. 법정에서 ‘좌초’를 증언한 사람들

(1) 희생자 유가족 이용기 예비역 해군부사관

22전대장 이원보 대령의 설명을 듣고 있던 유가족 이용기씨는 해군의 발표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나 봅니다. 그 큰 배가 백령도에 바짝 붙어서 들어갔으니 그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해군장교가 들고 있던 작전상황도를 빼앗아 들고 작전관 박연수 대위에게 따지듯이 묻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좌초를 했다는 말이오? 한번 찍어보시오.”하고 작전상황도를 박연수 대위 코 앞에 내밀었더니 작전관 박연수 대위는 백령도 서안 저수심지대를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찍어주었고 이용기씨는 그곳에 별표를 하고 옆에 ‘최초 좌초’라고 써넣습니다.

위 사진에 나오는 손가락의 주인공은 이용기씨입니다. 그는 희생자(원사)의 유가족이며 해군 부사관으로 근무하였던 예비역 해군입니다. 따라서 그는 ‘바다’도 알고, ‘군함’도 알고, ‘해도’도 알고, ‘조석간만’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유가족이었던 셈입니다. 작전상황도 속에 평균수면 6.4m와 최저수심 4m 그리고 당일 조석표를 상단에 적어 넣은 당사자도 바로 이용기씨입니다.

희생자 유가족 이용기씨의 법정증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용기씨의 증언 (2012. 6. 11. 천안함 11차 공판) 

“이원보 대령이 천안함이 좌초를 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지역이 초계함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아닌데 들어갔다고 해서 제가 작전관(박연수 대위)에게 가서 설명해 달라고 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좌초를 했다는 것이냐. '손가락으로 찍어봐라'하며 작전상황도를 내밀었더니 그 지점을 찍어주며 거기에서 좌초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지점에 별표를 하고 '최초 좌초'라고 쓴 것이다.” 

(2) 유가족 대표 박형준씨의 증언

2010년 5월5일 KBS '추적60분'은 <아시아경제>가 보도했던 '천안함 최초 좌초' 표시가 된 사진에 주목하면서 이 사진에 대해 박형준 유가족 대표와의 인터뷰를 소개하였습니다. 박형준 대표는 '최초 좌초' 표시와 관련 "해군 쪽에서 저희 가족들한테 설명을 해줄 때 이런 해도를 갖고 설명을 해줬고, 이 위치에서 사고가 났다"고 증언했습니다. 제작진이 "'최초 좌초지점'에 대한 얘기를 했다는 말이냐"고 묻자 박 대표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3) 해경 501함 유종철 부함장의 증언 – 2011. 8. 22

천안함 1차 공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유종철 해경 501함 부함장은 “천안함이 좌초됐다”는 상황을 전문으로 보고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유 부함장은 사고 후 현장으로 달려가는 상황에서 전문을 받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해경이 천안함과 관련하여 공식으로 작성한 최초에 문서에는 분명히 ‘천안함 좌초’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4) 심승섭 준장(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 : 현 해군참모총장

천안함 사고 당시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대령)이었던 심승섭 준장(現 대장. 해군참모총장)은 2011년 9월 법정 증인으로 출석하여 천안함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서 상태를 보고했다는 진술과 함께 사고 원인에 대해 2함대로부터 ‘좌초’로 보고 받았으며, 해군작전사령부 역시 합참에 최초 상황을 ‘좌초’로, 상황 발생 시각을 21시15분으로 보고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민중의소리] 천안함 2차 공판 - 해군장성, “9시15분 좌초라 보고했다”

지난해 3월 천안함 침몰 사고 당시 구조·탐색작전을 지휘했던 해군 장성이 천안함 사고 직후 합동참모본부에 최초 상황에 대해 '좌초'라고 보고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심 전 처장은 또 최초 사고 보고를 받은 시간에 대해서도 '9시15분'이라고 증언했다.

20일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19일 천안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에 대한 2차 공판기일(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 재판장 유상재 부장판사)에서 심승섭 해군작전부 전 작전처장(현 준장)이 이같이 밝혔다. 

지난달 23일 열린 1차 공판에서 천안함 구조 해경이 "좌초라고 보고받았다"는 증언을 한 데 이어 좌초 보고와 관련된 핵심 관계자의 증언이 나온 것이라 재판은 신 대표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심 전 처장은 이날 법정에서 "천안함 사고 직후인 21시35분경 2함대 사령부로부터 '원인 파악중인 상태였다. 상황실 계통으로 좌초인 것 같다는 얘기가 있었다. 파공이라는 얘기도 있었다'고 보고받았다"고 증언했다. 

심 전 처장은 또 해작사가 합참에 보고할 당시 최초 상황 발생 시각을 21시15분으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해작사에서는 합참에 보고할 때 (최초 상황이) 21시15분경으로 보고했다. 당시 좌초(라는) 보고가 (2함대사령부로부터) 21시35분경 접수됐고, (원인을) 파악중이었다"고 전했다. 

심 전 처장은 이어 "천안함 영상을 보면서 상태를 보고했는데, 21시30분 이전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해 보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해작사가 이를 합참에 보고한 시각은 21시43분~45분 사이였다"고 말했다. 

강경훈 기자 | 2011-9-20

출처 : http://www.vop.co.kr/A00000433585.html

항해당직사관인 박연수 대위가 직속상관인 22전대장 이원보 대령에게 “최초에 좌초했다” 보고합니다. 2함대 지휘통제부에도 ‘좌초’로 보고합니다. 22전대장 이원도 대령은 실종자 가족분들 앞에서 작전상황도까지 펼쳐놓고 “최초 좌초했다”고 브리핑합니다. 그런데 제1차 사고(좌초)만 언급할 뿐 제2차 사고(반파)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실종자 가족 이용기씨가 “도대체 어디서 좌초를 했단 말이냐?”고 묻자 박연수 박연수 대위는 손가락으로 해당 지점을 찍어줍니다. 이용기씨는 그 위에 별표를 하고 ‘최초 좌초’라고 마킹을 합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합니다. 실종자 가족분들이 “그 수심 낮은 곳에 군함이 왜 가느냐?”며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항의합니다. 

그 이후 해군의 공식발표와 대원들의 진술서 어느 곳에서도 ‘좌초’라는 단어는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천안함 사고원인과 관련하여 모든 발표를 국방부가 주도합니다. 그 이후 사고 원인은 ‘폭발’로 가공되기 시작합니다.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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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작전상황도’에 담긴 비밀천안함 ‘좌초’에 대하여③


출처: http://www.minplus.or.kr/news/articleView.html?idxno=6182

  •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 승인 2018.10.21 10:29
지난달 13일 평택2함대에서 열렸던 천안함 선체 및 어뢰에 대한 검증절차를 기점으로 천안함 사건 관련 항소심 재판이 후반부로 진입했다. 하여 지난 8년간 분석하고 재판을 통해 확인되었거나 문제가 제기된 내용들을 총정리하여 주제별로 연재한다. [필자주]

1. 천안함 진실의 보고(寶庫) ‘작전상황도’에 담긴 비밀

작전상황도에는 참 소중한 정보들이 들어 있습니다. 만약 저 작전상황도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천안함 진실의 문은 더 오랜 세월 닫혀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핵심적인 내용들이 해군 부사관인 유가족 이용기씨의 메모와 함께 ‘해도(海圖)’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1) ‘최초 좌초’ 지점은 어떤 곳?

‘최초 좌초’ 지점이 어떤 해저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지 해도 속에 그 정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초 좌초’ 지점은 저수심지대입니다. 수천 년에 걸쳐 북쪽에서 빠른 조류를 타고 내려오는 토사(규사)들이 백령도에 부딛쳐 휘감아 돌면서 조류의 흐름 방향에 따라 마치 개불처럼 ‘ㅅ’자 형태로 만들어진 해안사구의 중간지점이며 이곳의 해저지형은 해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류에 떠내려 가던 모래(Sand) 알갱이들 가운데 큰 것들이 해안사구 구릉에 부딪쳐 가라앉으면서 쌓이게 되니 그곳에 조개껍데기(Shell)들도 떠내려가다 걸려서 쌓이게 되는 형태입니다. 이런 곳에는 돌맹이도 있고 자갈도 있으며 중국어선들이 버리고 간 갈고리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2) ‘최초 좌초’ 지점의 지형은?

‘최초 좌초’ 지점을 확대한 우측 그림의 ‘S.Sh’ 기호는 S(Sand. 모래)와 Sh(Shell. 조개)라는 뜻이며 ‘모래와 조개껍데기’로 구성된 해저지형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암초(바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암초(바위)가 존재한다면 반드시 그곳에 ‘R(Rock)’ 표기가 있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암초’가 있으면 ‘R' 표기가 있어야 하고, ‘R’ 표기가 없다면 ‘암초’가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해저지형에 선박이 좌초할 경우 선체가 반파될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그러나 해저지질에 선체하부가 접촉한만큼 스크래치, 찢어짐, 파공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1200톤 하중의 선체가 좌초하며 해저를 파고들거나 짓눌렀을 때 해저의 돌맹이와 갈고리 등으로부터 받게 되는 손상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위 사진에 나타난 손상들은 모두 천안함이 좌초시 겪었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체하부의 스크래치, 프로펠러샤프트에 감긴 어구와 갈고리, 선체 길이방향으로 찢어진 손상, 함안정기에 걸린 그물과 돌맹이, 찌그러진 빌지킬, 휘어진 프로펠러 등은 어떤 지형에서 어떤 손상을 입었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3) ‘최초 좌초’지점은 천안함이 좌초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

소형 어선이 아닌 초계함급 함선이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좌초할 수 있는 곳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천안함은 정해진 항로를 왕복 운항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며 특별히 의심하지 않아도 될만큼 통상적인 항로로 운항을 하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천안함 함장이 “16번이나 항해를 했지만 이상이 없었다”라고 말한 것도 충분히 맞는 말이며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방심한 것이 있습니다. 하필 그날 천안함은 하루 가운데 가장 물이 낮은 시간에 바로 가장 저수심 지점 위를 항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내용은 작전상황도에 그 사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안함 유가족 이용기씨는 왼쪽 그림 상단에 조석표를 기록하였습니다. 하루 중 최저 저조인 시각이 22시39분입니다. 사고 시각이 21시22분이니 최저조 시간대입니다. 그리고 평균수심 6.4m인 지점의 최저수심은 불과 4m입니다. 천안함이 그 시간대에 그 지점을 지난다면 무조건 좌초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날 그 시각에 천안함은 그 지점 위를 항해했고 그 결과는 ‘좌초’였습니다.

2. 항해당직사관의 항해 과실 

(1) 백령도 쪽으로 대각도 변침한 것은 잘못

천안함 좌초 사고의 1차적 책임은 항해당직사관에게 있습니다. 함장 또한 지휘관으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해군 소위 임관 후 3년밖에 되지 않는 항해장교에게 야간 연안항해의 책임을 맡긴 함장의 지휘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저수심 투성이인 백령도 인근을 항해해야 한다면 함장이 함교에 올라와 있거나 아니면 저수심 지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항로를 운항하도록 지시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항해당직사관인 박연수 대위가 행한 중요한 과실은 대각도 변침시 조류와 바람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무슨 얘긴가 하면 당시 북서풍이라 바람이 남동방향으로 불고 있었으며 조류 또한 같은 남동방향이었습니다. 

특히 저속인 경우 바람과 조류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데 백령도 서안 남쪽 끝까지 내려온 천안함이 대각도 U-Turn을 하여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려 한다면 백령도 쪽이 아닌 외해 쪽으로 변침 선회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침 이후 백령도에 가까워져 저수심 지대로 진입하는 사고를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의 그래픽은 천안함 좌초 직전의 항적입니다. 천안함은 21시05분 좌현전타로 대각도 변침을 시작하여 21시09분에 변침을 완료합니다. 여기서 항해당직사관은 수심이 깊은 우현쪽으로 변침을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좌현쪽으로 변침함으로써 백령도 저수심 지대 위를 항해하게 된 것입니다. 

(2) 박영선 의원의 KNTDS 항적 비교

위 그림은 당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합참에서 KNTDS를 확인한 것으로 국방부는 유일하게 박영선 의원에게만 공개하였습니다. 

국방부는 박영선 의원이 여성이어서 해군과 운항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 편하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으나, 정작 박 의원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들을 언론을 통해 발표하였습니다. 첫째는, 대각도 변침시 왜 6.5노트에서 9노트로 스피드를 올렸느냐. 둘째로, KNTDS 항적을 찍어보니 기존에 발표한 내용과 다르게 600m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따지고 묻는 박 의원에게 처음엔 부인했다가 나중에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수준의 답변만 한 것이 전부입니다. 

박 의원이 가졌던 의문에 대한 해답은 이렇습니다. 

첫째, 대각도 변침시 6.5노트에서 9노트로 속도를 높인 것은 항해당직사관이 ‘좌현전타’변침 지시를 한 이후 창밖을 보면서 백령도가 너무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스피드가 낮으면 회전반경(Turning Circle)이 길어집니다. 따라서 박 대위는 빨리 선회를 하기 위해 스피드를 9노트로 올렸을 것이라 저는 분석합니다. 

둘째, 국방부가 보여준 KNTDS 좌표가 기존에 발표한 내용과 다르게 600m 이동되어 있다면 그것은 KNTDS 정보를 조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디지털정보는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KNTDS 항적이 ‘최초 좌초’ 지점 위를 지나지 않으려면 모든 항적을 일괄 이동시키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 저는 분석합니다. 

아무튼 항해당직사관 박연수 대위는 대각도 변침을 하면서 수심이 깊은 외해 쪽이 아닌 백령도 쪽으로 선회를 하였고, 조류와 바람의 영향으로 인해 생각보다 더 백령도에 가까워진 채로 항해를 계속함으로써 ‘최초 좌초’ 지점 위를 항해한 결과 좌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3) 좌초 사실을 함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항해당직사관

항해당직사관의 가장 큰 과실은 함선이 좌초를 하였음에도 함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상황을 해결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8년간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모든 자료와 정황에 대한 분석, 그리고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진술서 전부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항해당직사관이 함장에게 보고하거나 함교로 호출한 정황이나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함장은 제1사고와 제2사고를 겪는 내내 자신의 방인 함장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함장은 두 번째 사고 직후 허순행 통신장과 김수길 전탐장 등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비로소 함장실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두 번의 사고를 겪는 동안 함장이 모를 수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좌초’시 저속으로 모래톱에 부드러운 좌초가 되어 대원들이 체감적으로 인지하지 못하였고 항해당직사관은 보고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판단으로 이초(離礁. 좌초상태에서 빠져나옴)하였으나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두 번째 사고를 당해 반파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함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대원들 대부분은 천안함이 좌초했다는 사실 자체를 느끼거나 알지 못하였습니다. 천안함 함교 당직자들조차도 ‘이게 뭐지?’하며 잠시 우왕좌왕하다가 후진으로 선체가 빠져나옴으로써 한숨을 돌리는 상황이었을 것으라 저는 분석합니다.

그리고 기관실에서조차 좌초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좌초 당시 선저외판의 크랙 부분과 가스터빈실 외판 파공(10cm x 10cm)된 부위로 급격하게 침수가 발생하면서 알람이 울리고 보수요원들이 급히 보수를 위한 장비들을 가지러 후타실쪽으로 달려갔으나 곧이어 거대한 충격과 함께 발생한 두 번째 사고로 인해 선체가 반파되었던 것입니다.

좌초 이후 반파 사고에 이르기까지 초간단으로 요약하여 말씀드렸지만, 그 하나하나가 상당한 분량의 근거와 증거로 설명되어야 하는 까닭에 이번 글에서는 이 정도로 마무리를 하고 앞으로 이어질 글들에서 궁금하신 모든 내용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상세 설명드리게 될 것입니다.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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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선체, 스스로 ‘좌초’를 말한다천안함 ‘좌초’에 대하여④


출처: http://www.minplus.or.kr/news/articlePrint.html?idxno=6183

  •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 승인 2018.10.22 09:24
지난달 13일 평택2함대에서 열렸던 천안함 선체 및 어뢰에 대한 검증절차를 기점으로 천안함 사건 관련 항소심 재판이 후반부로 진입했다. 하여 지난 8년간 분석하고 재판을 통해 확인되었거나 문제가 제기된 내용들을 총정리하여 주제별로 연재한다.[필자주]

1. 천안함 선체에 드러난 좌초의 흔적들

(1) 천안함 선저하부 스크레치 

조선소에서 수리하고 나올 때 선체는 깨끗한 상태로 출항합니다. 천안함 외판은 세 가지 색상의 페인트로 도색되어 있었습니다. 회색, 흑색, 적색 페인트입니다. 회색과 흑색은 부식방지용 도료이며 적색은 방오도료(해양생물 부착방지용)입니다.

 

그런데 위의 사진을 보면 하부의 적색 페인트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벗겨져 나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수리 후 나올 때에는 우측 사진과 같이 상부에 회색 페인트, 중간에 흑색 페인트 그리고 하부에 적색페인트가 칠해집니다. 그런데 하부의 적색페인트가 벗겨지면 흑색페인트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선저외판 미세 스크래치들

선저외판에 나 있는 미세한 스크래치들은 100% 좌초 외에는 원인으로 들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3) 빌지킬, 함안정기 손상

빌지킬과 함안정기의 손상형태는 물리적 손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천안함 프로펠러 손상

(5) 선저외판 파공 – 가스터빈실

천안함 외판에 파공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다가 2015년 평택 2함대에 거치된 가스터빈실을 살펴보고서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촬영) 가로×세로 약 10cm×10cm 사이즈의 파공으로 천안함이 좌초시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천안함이 파공으로 침몰한다는 기사들이 넘쳤고 심지어 이명박조차도 ‘파공으로 침몰’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정작 파공된 위치를 찾지 못하던 중 가스터빈실 외판에서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가스터빈실 외판의 파공은 가스터빈실 인양 당시에도 확인 가능했습니다만, 당시 가스터빈실을 야적장에 엎어 놓았던 관계로 발견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늦게나마 파공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천안함 사고 원인 규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2. 선저외판 좌초 흔적의 완벽한 제거

국방부는 천안함 선체에 대하여 <부식방지 및 영구보존>이라는 명목 아래 천안함 선체에 나타나 있는 천안함 사고의 핵심 증거들을 훼손 혹은 멸실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행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인은 국방장관을 증거인멸의 행위로 고발하는 등 강력하게 항의를 한 바 있습니다.

(1) 천안함 하부 스크래치 멸실 

2010년 4월15일 천안함 함미가 처음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바지선에 탑재되는 순간, 선체 하부에 선명하게 나타난 '길이방향의 스크래치'는 뱃사람이라면 누구나 천안함이 좌초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절대적이고도 가장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1년 국방부는 선체부식 방지 및 영구보존을 이유로 선체에 대하여 고압분사 워싱 등의 방법으로 선체의 녹 등을 완전히 털어내고 부식방지 코팅처리를 시행합니다. 그 결과 선체하부의 스크래치는 완전히 멸실되어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업체(주/아이티시에스)에 의뢰하여 외판을 정비한 모습입니다. 이것은 주요 증거물 훼손에 해당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국방부는 그러한 작업에 대해 피고인이나 변호인단에게 어떠한 설명 혹은 동의를 구한 사실이 없습니다. 

(2) 천안함 좌현 충돌부위 녹색페인트 멸실

천안함 함미 좌현 절단부에는 천안함을 반파에 이르게 한 충돌의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충돌의 상대방은 앞이 둥근 물체이며 그로 인해 천안함 선체가 둥글게 움푹 들어간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판의 움푹 들어간 곳에 충돌 상대방으로부터 묻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녹색계열의 페인트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선체부식 방지 및 영구보전을 위한 목적이라며 선체를 말끔하게 털어내고 부식방지 페인트를 도포함으로써 핵심 증거를 멸실케 하였습니다.

초기 천안함 좌현에 천안함의 고유 페인트 색상(회색, 흑색, 적색)이 아닌 다른 페인트가 묻어 있었다는 사실은 항소심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정호원 88수중개발 부사장의 증언을 통해서도 밝혀진 바 있습니다. 

평생 사고 난 선박의 인양업무를 업으로 삼았던 그는 “천안함에 없는 페인트 색을 보았다”고 법정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흔적은 사진으로만 존재할 뿐 현장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며, 지난 9/13 선체 검증에서도 재판부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3) 함안정기 프레임 녹 제거

함안정기 손상형태(아래 왼쪽)는 ‘좌초’를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국방부 합조단은 부식장지의 명목으로 아래 오른쪽과 같이 완전히 벗겨내고 도포해 버렸습니다.

이 사진이 왜 중요한가 하면, 함안정기는 ‘프레임(Frame)’이 촘촘하게 배치된 구조물이어서 프레임 부분의 굴곡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물이 ‘강한 외력’을 만났을 때, 어떠한 형태로 손상을 받는지 분석하는 것은 ‘외력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가상실험으로 우리 손등 위에 소규모 ‘폭발’로 충격을 주고 폭발에 의한 ‘화상’을 입힌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아래와 같이 손가락 마디의 튀어나옴과 상관없이 손등 전체에 골고루 ‘폭발’에 의한 혹은 ‘화상’에 의한 손상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손등이 운동장 바닥에 긁혔거나, 손등 위를 거친 물체가 긁으며 지나갔다면, 즉 물리적인 손상(physical Damage)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래 사진과 같이 손가락과 손등의 돌출된 부위가 집중적으로 까지거나 긁히는 손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표면 전반적으로 손상이 발생했는지 아니면 부분적으로 손상이 발생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특성으로 손상이 발생했는지 살피고 분석하는 것은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에 필수적인 사항인 것입니다. 

함안정기에 나타난 이 현상에서 왜 프레임부분의 페인트가 집중적으로 벗겨졌고 그곳에 녹이 발생했는지 따지지 않고 ‘폭발’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단언컨대 ‘폭발’로는 저런 손상의 형태가 ‘절대로’ 발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함안정기 뿐만아니라, 이러한 물리적인 접촉에 의한 손상은 선체 전반적으로 발생합니다. 이른바 국방부가 말하는 폭발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았다고 주장하는 ‘가스터빈실’인양 직후의 사진을 보아도 동일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측 사진은 가스터빈실이 인양되어 2함대에 거치된 후 촬영된 사진으로 길이 방향의 프레임 부분이 집중적으로 손상되고 그곳에 녹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저바닥이 해저 모래톱을 파고 들어갈 때 돌출된 프레임 부분이 집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던 ‘물리적 손상’에 의하여 선저 페인트가 벗겨진 결과인 것이며 이 현상은 ‘좌초’ 이외엔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될 수 없는 선체 손상인 것입니다.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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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초한 채 그대로 두었다면 단 한명도 다치지 않았다천안함 ‘좌초’에 대하여⑤


출처: http://www.minplus.or.kr/news/articlePrint.html?idxno=6211

  •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 승인 2018.10.24 17:51
지난달 13일 평택2함대에서 열렸던 천안함 선체 및 어뢰에 대한 검증절차를 기점으로 천안함 사건 관련 항소심 재판이 후반부로 진입했다. 하여 지난 8년간 분석하고 재판을 통해 확인되었거나 문제가 제기된 내용들을 총정리하여 주제별로 연재한다.[필자주]

1. 좌초시 그대로 두어야 하는 이유

천안함 사건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쉽고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 천안함 항해당직사관이 저수심에서 ‘최초 좌초’하였을 때 배를 무리하게 빼지 말고 좌초된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2함대에 구조요청을 했더라면 단 한 사람도 다치거나 희생될 일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일상생활 가운데 만약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할 경우 당장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 한 응급차량과 전문구조원을 불러서 부목을 대거나 들것으로 옮겨 병원에 이송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보편적 상식이 되었습니다. 모두 홍보와 교육의 효과입니다.

급한 마음에 아무나 환자를 일으켜 세우거나 이동하는 경우 척추신경 손상과 같은 2차적 손상이 발생하여 평생 불구가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박도 다르지 않습니다. 좌초한 선박은 절대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항해사의 철칙입니다.

▲휴양지 백사장에 좌초한 배(좌), 곱디고운 뻘밭에 좌초한 배(우)

위 사진처럼 아주 운좋게 휴양지 백사장에 좌초한 경우이거나 ‘머드팩’하기 좋을 만큼 부드러운 뻘 밭에 좌초한 경우가 아닌 한, 선박이 좌초로 해저 바닥을 파고 들거나 돌, 자갈 등을 짓누르는 경우 반드시 선저하부 외판이 찢어지거나(크랙), 구멍이 나는(파공) 등의 손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누누이 말씀드립니다만, 선박이 쇠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강할 것이라 착각하기 쉬운데 사실 선박은 구조역학적으로 매우 약한 구조물입니다. 물에 떠있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악천후에 견딜 수 있으며 목적(화물, 여객, 운송, 전투 등)에 부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철판만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선저외판의 손상은 즉시 ‘침수’를 유발하며 선박의 가장 낮은 곳부터 해수로 채워나가게 됩니다. 선박의 가장 낮은 곳에는 엔진룸이 있고 그곳에 해수가 차게 되면 엔진이 정지되어 기동력을 상실합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좌초한 배를 무리하게 빼는 행위는 거의 ‘자살행위’입니다. 

‘좌초’의 사전적 의미는 ‘배가 암초에 부딪침’인데, 암초뿐만 아니라 모래든 뻘이든 선박이 땅(Ground)에 닿는 모든 상황을 좌초라고 합니다. 배가 암초든 땅이든 닿았다는 것은 어쨌거나 수심이 얕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대로 두면 기껏해야 기관실과 하부 구획들만 침수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면 구조를 요청한 뒤 전 대원을 안전한 상부갑판으로 이동시키고 구조선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랬더라면 천안함에는 단 한 사람도 다치거나 희생을 당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안함 항해당직사관은 무리하게 배를 후진으로 뺐습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추정해 보건데, ‘좌초’나 ‘충돌’을 경험하지 못한 초급장교가 운항 중 합선의 기동력에 문제가 생기니 ‘좌초’라는 생각에 미치지 못하고 혹시 그물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여 후진엔진을 썼던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실제 후진엔진을 써서 배가 빠져나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습니다. 선저하부가 찢어지고, 가스터빈실 하부에 10cm×10cm 파공이 발생하여 침수가 시작되고 프로펠러가 휘어지는 등 심각한 일이 벌어지지만 그 모두 수면 아래에서 발생하는 일이라 정작 함교의 당직사관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합니다.

2. 무리한 이초(離礁, 좌초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것)

그 결과는 심각했습니다. 최저수심 4m인 곳에서 좌초를 한 천안함을 후진으로 빼내 수심 47m 지점까지 이동하는 동안 엄청난 침수를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함교 당직사관이 함장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작 함교에서는 침수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관실은 난리가 났습니다. 가스터빈실 하부 선저하부 파공 부위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줄기는 엄청났을 것입니다. 1200톤 선체가 짓누르는 압력으로 뿜어져 들어오는 해수는 마치 화재시 소방호스 물줄기 같았을 것입니다. 

▲가스터빈실 파공부위(10cm×10cm)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촬영. 2015.

파공이든 크랙이든 침수를 막기 위한 1차적 조치는 널빤지를 대고 침목으로 받침대를 만들어 해머로 내리쳐 일단 침수를 줄이는 방법 외에 없습니다. 널빤지와 침목, 그리고 해머는 후타실과 보수공작실에 있습니다. 김종헌 중사와 김동진 하사가 후타실로 즉각 달려갔던 이유입니다. 

당시 후타실에는 대원 두 명이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종헌 중사와 김동진 하사, 그리고 대원 2명 포함 모두 4명의 승조원들은 후타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곧 이어 발생한 ‘충돌’로 선체가 반파됩니다.(추후 게재될 ‘충돌에 대하여’ 글에서 상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 최초 좌초 시각은? 

‘21시15분’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천안함이 최초 좌초한 시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몇시 몇분’이라고 확정한 적이 없습니다. ‘좌초 후 충돌’이라는 원인을 밝힌 이후에도 그 시각을 확정하기까지는 상당한 오랜 시간 분석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검증과 확인을 무수히 거듭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천안함 침몰사고에 대한 국가기관의 공식발표는 단 하나 - 사고도 단 한 번뿐이고, 그것은 폭발이며 폭발 시간은 21시21분58초. 그 근거는 지자연(지질자원연구소)의 지진파. 그로부터 폭발원점의 방위각을 산출하여 ‘피격지점’ 확정. 

정부가 ‘최초 좌초’사실을 은폐하였으니 그 시각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일 천안함의 항적과 238초소에서 촬영한 TOD 영상들을 복기하고 압축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매우 유의미한 결론, ‘좌초 후 충돌’의 시각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좌초시각 21시15분, 충돌시각 밤 21시22~24분 사이. 이것이 제가 결론내린 좌초 및 충돌 시각입니다. 좌초시각은 21시15분이라 확정하면서 충돌시각을 21시22~24분으로 범위를 넓게 설정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좌초 시각은 구체적 정황과 여러 데이터가 존재합니다. 사고 순간 전후의 상황을 압축하여 시간을 확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충돌의 경우 그 시각을 확정할 수 있는 정황의 범위를 좁히는 게 쉽지가 않았고, 무엇보다 충돌은 발생 순간부터 선체가 완전히 반파될 때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선체가 충격과 무게 중심에 의해 순서대로 뜯겨져 나가는 동안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TOD 영상 속에 사고 순간의 영상은 존재하지 않지만, 사고 직후의 천안함 모습이 잡힙니다. 실제 그 모습은 ‘폭발 즉시 반파’라는 국방부 주장과는 달리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는’ 천안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령도 여섯 군데 초소에서 모두 TOD를 촬영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유일하게 238초소 영상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군사기밀’이라는 명목으로 공개를 거부하였습니다. 국방부가 238초소 영상만 공개한 이유는 ‘사고 순간’의 영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분석합니다.)

분석과정에서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은, 좌초시각(21시15분)과 충돌시각(21시22~24분)이 겨우 7~9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좌초한 배가 이초한 후 충돌하기까지 겨우 7~9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게 말이 돼? 이것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데에는 많은 데이터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국방부가 확정한 사고시각 21시21분58초는 지자연(지질자원연구소)의 지진파 발생시각을 기준으로 하여 확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른바 ‘피폭 지점(폭발 원점)’ 역시 지자연의 지진파로부터 얻은 데이터 값을 기준으로 확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국방부의 발표가 정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국방부가 발표한 피폭지점(폭발원점)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은 238초소에서 촬영된 TOD 영상만으로도 간단하게 입증이 가능하며 이 또한 앞으로 게재될 ‘충돌에 대하여’ 부분에서 집중 다루게 될 것입니다.

4. 최초 좌초 시각 – 처음부터 보도되었다

사실 지나놓고 보면 ‘진실은 가까운데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천안함 사건 초기에 언론들은 ‘좌초, 파공, 침수’를 집중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방부가 모든 발표를 장악하고 통제하기 시작한 이후 사고원인은 ‘폭발’로 둔갑하기 시작하였고, 이른바 ‘1번을 쓴 어뢰’를 등장시켜 군 장성들이 높은 의자에 기대고 앉아 낭독하듯 선언하며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결국 최초 보도된 내용들이 모두 진실이었습니다. 국가 권력기관이 주도하며 조작과 왜곡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던 초기 상황, 언론사 기자들이 해군 관계자들을 직접 취재하여 보도된 내용 속에 진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방부의 거짓을 세상에 고발하고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내부자들의 숨은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군 관계자가 언론에 익명으로 제보한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최초 상황일지’입니다. 군관계자 한 분이 천안함 사고시각과 관련, 군 당국의 발표인 밤 9시22분보다 빠른 밤 9시15분에 ‘최초 상황이 발생했다’며 ‘최초 상황일지’를 MBC에 제보, 보도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던 내용입니다. 

출처 : http://imnews.imbc.com

익명의 군 관계자가 MBC에 제보한 최초 상황일지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MBC의 보도 기사 마지막 부분에 천안함 사건의 개요와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한 ‘진실 덩어리’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문건에 따르면 천안함은 9시15분에 1차 충격이 있었고, 6-7분뒤 2차 충격으로 3분만에 가라앉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군이 발표한 최초 발생 시간 9시 22분까지는 천안함에 뭔가 급박한 일이 벌어졌을 걸로 추정됩니다. -출처 : http://imnews.imbc.com

바로 이 부분입니다. 천안함은 9시15분에 1차 충격, 6∼7분뒤 2차 충격으로 3분만에 가라앉았다... 이것이 진실이었습니다. 다만 1차 충격은 ‘좌초’이며 2차 충격은 ‘충돌’이라는 구체성이 빠져있긴 하지만 사건의 개요와 사실관계를 대단히 정확하게 짚었던 특종보도였습니다.

저는 이 보도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으며 누가 제보했을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이에 대한 당시 ‘동아닷컴’의 기사가 있어 소개합니다. 

출처 : http://news.donga.com

동아닷컴은 국방부의 ‘거짓 해명’을 문제삼으면서도 ‘문건의 유출’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동아다운 보도입니다. 

언젠가는 ‘최초 상황일지’를 MBC에 제보한 군 관계자가 누구인지 본인이든 MBC든 밝혀질 날이 오겠지요. 그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언

천안함은 2010년 3월26일 21시15분에 ‘최초 좌초’하였습니다. 그러나 항해당직사관이 무리하게 후진으로 빠져나온 후 7∼9분 뒤 수심 47m 해역에서 21시22∼24분경 ‘충돌’로 반파되어 침몰하였습니다. 

다음 편의 글은 ‘천안함 프로펠러의 손상’에 대한 분석글을 올려 드리고 이어서 ‘충돌에 대하여’ 시리즈 글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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