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고 검찰 수사받는 기자들, 이게 정의인가"
미디어오늘 차현아 기자 입력 2016.05.05. 18:05 수정 2016.05.05. 19:11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의혹은 수사 안 하고 의혹 제기한 기자만 수사, 기자들은 벼랑 끝에 있다”
“여론을 조작하고 있는 세력을 진상규명하려고 하는데 외려 진상규명하는 기자를 옭아매고 고통을 주는 데 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자들은 벼랑 끝에 몰려있다.”
한국의 언론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여론조작, 상업성만 강조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 그리고 기자의 취재를 막고자 남발되는 전략적 소송이다. 진실을 취재하고 보도하려는 기자들을 옭아매는 환경은 진실을 알고싶은 기자들의 기본적인 질문조차 두렵게 만든다. 언론자유지수 70위라는 수치는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한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회의실에서는 새언론포럼-자유언론실천재단 공동 기획 인문학 포럼의 일환으로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의 “언론자유지수 70위, 현장 기자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강연이 열렸다.
강진구 기자는 2014년부터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글로벌기술정보용역사업이 국정원의 댓글부대 역할을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 보도를 연이어 터트렸다. 글로벌기술정보용역사업의 용역을 수행했던 그린미디어가 발행하는 매체의 회장을 비롯해, 용역 수주 과정까지도 국정원과 연계가 의심된다는 의혹을 제기한 연속 보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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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사진=차현아 기자. |
약 4개월 간 ‘이상하다’는 의심을 품고 일했던 이 두 제보자들이 강 기자에게 전달했던 이야기는 놀라웠다. 내부 서버에는 무수히 많은 아이디와 이름이 저장돼있는 공간이 보였고, 가명으로 작성한 기사가 용역 업체에서 발행하는 매체로 넘어가 유통되는 과정을 지켜봤다는 것이다. 제보자들에 따르면 익명의 아이디들은 여러 매체에 동시 사용됐고 이 중에는 5.18과 제주 4.3사건 등을 폄하하거나 정치적으로 극우 성향을 띤 기사도 있었다.
강 기자도 처음에는 이 제보 내용을 국정원과의 연계보다는 ‘부실용역’이라는 문제로 접근했다고 했다. “끌려가서 무슨 고초를 받을지 모르니까”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파면 팔수록 끝없이 국정원과의 의심스러운 고리들이 끌려나왔다.
해당 용역에 예산을 배정하는 데 국정원이 도움을 준 의혹이 있고, 국정원 출신 인사가 용역업체 발행 매체의 회장이라는 것도 취재했다. 과업 지시서도 수상했다. 과업 지시서에 따르면 접속보안 유지를 위해 로그인도 매일 다른 암호를 부여하거나 ‘첩보수집’ 등의 용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용역 보고서에는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정보를 모두 긁어모으는 여론 동향을 파악하는 데 이용되는 크롤링 기능도 포함됐다. 용역팀 팀장은 국정원 입사를 희망하는 수험생을 상대로 다년간 강의를 했고, 그의 제자들이 토요일마다 와서 어떤 ‘작업’을 하고 돌아갔다는 증언도 있었다.
강 기자는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수출정보용역사업이니까 해외에 댓글부대 기지를 건설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말을 하더라. 단순 수출정보조직사업이라고 하기엔 냄새가 너무 많이 났다”고 말했다. 강 기자는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일련의 의혹 기사를 경향신문에서 4회, 주간경향에서 15회에 걸쳐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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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tock. |
강 기자는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해 "힘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수사는 5일에 걸쳐 8000쪽 가량의 수사 결과물을 놓고 의견을 진술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점심 저녁은 주지 않았다. 알아서 사먹어야 했다. 그러나 단순히 수사 시간이 길어서 힘든 것은 아니었다.
강 기자는 “검찰은 정작 의혹은 수사 안 하고 의혹을 제기한 기자만 수사했다. 고소인은 기사 목록을 제시하면서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하면 끝이다. 기자는 일일이 증거를 제시하며 기사 내용이 진실로 믿을만한 이유를 제기해야한다. 댓글을 직접 다는 걸 봤냐, 댓글을 달아야 댓글부대 아니냐는 부분도 30여분에 걸쳐 소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강 기자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과정도 언론의 자유를 옥죄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강 기자는 “언론중재위원회는 언론중재법상 정정, 반론보도 요건도 잘 안 따지고 화해를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신청인은 반론보도를 마치 기자가 잘못 써서 정정보도했다는 것처럼 악용하기도 한다. 심리적 위축 효과를 노리며 손해배상 청구도 같이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언론사들도 조정이 성립되지 않아 소송으로 넘어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합의를 하고 끝내려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
최근 강 기자가 썼던 아리랑TV 방석호 사장의 재직시절 입찰비리 의혹 기사에만 약 25건의 정정보도 신청이 들어왔다. 강 기자에 따르면 언론중재위 조정실은 국감장을 방불케했다. 아리랑TV 실무팀장들이 총출동했다는 것이다. 녹음파일과 공시자료를 참고로 쓴 기사도 허위라는 주장이 나왔다. 정정보도나 반론보도의 대상이 되지 않는 기사 내 평가나 의견 표명 부분도 조정신청 대상이 됐다고 강 기자는 말했다.
진실을 보도하려는 언론에 온갖 소송과 조정이 휘몰아치면 언론은 스스로 입을 닫고 진실을 외면하게 된다. 한국 언론 자유도 70위를 보여주는 현실이다.
강 기자는 한국 언론이 처한 실존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언론 간의 연대를 제시했다. 강 기자는 “시사저널이 보도한 어버이연합 관련 의혹을 다른 언론들이 뒤이어 함께 보도해주니까 그나마 함부로 못 했던 것이다. 댓글부대 의혹은 혼자 싸우고 있다. 기자들의 연대가 절실하다. 전략적인 봉쇄 소송에 전략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 기자는 “6월부터 다시 (댓글부대 보도로) 칼을 빼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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